지금 소개하는 908은 보이차 업계에서 꽤 유명한 차로서 추병량 선생이 만든 차입니다. 보이차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추병량 선생은 96년말에 오랫동안 창장으로 근무했던 맹해차창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이미 자기만의 독자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고 실제로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인 99년 하반기에 해만차창을 설립하게 됩니다.

모름지기 보이차 사업을 하려면 좋은 차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추 선생도 모종의 준비를 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유명한 96년 노동지 숙전차로서 맹해차창에서 만들었지만 외부로 출고되지 않은 채 전량을 추선생이 갖고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맹해차창 출품이지만 실제로는 추병량 개인 출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노동지는 해만차창의 대표적인 상표로 성장하게 됩니다. 노동지 외에 또 하나의 야심찬 준비가 바로 지금 소개하는 908입니다.

외포장지에 908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억지로 추측해보자면 90년대 차청으로 찍어서 앞에 90을 넣은 것이고, 뒤의 8은 해만차창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차는 98년 말에 한 번, 99년 초에 한 번 생산했으며 이 두 종의 908은 동일한 차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표는 해만차창이 아닌 중차공사의 중차패입니다. 당시 해만차창은 생산설비를 이미 갖추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정식으로 출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만차창 상표로 찍지 못하고 중차패로 찍은 것입니다.

이 차의 원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추병량 선생이 퇴직하면서 맹해차창에서 갖고 나온 93~96년에 생산된 모차, 두번째는 98년에 추선생이 독자적으로 수매한 모차, 세번째는 중차패로 압병하기 위해서 중차공사와 협상하면서 사들인 중차공사가 보관중이던 모차입니다. 총생산량은 약 15~20톤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이 차는 해만차창에서 찍어낸 최초의 병차가 됩니다. 해만차창 최초의 전차는 역시 908이라는 이름의 전차인데 수량이 적어서 시중에서 보기 힘듭니다.

비록 건창으로 보관되었지만 광동의 조습한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병면에 한 두 잎 정도 백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자연습을 먹은 것으로서 차품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극히 적은 부분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뒷면 역시 자연습을 먹어서 극히 일부 백상이 보입니다. 습창과는 전혀 상관없으니 100% 안심해도 됩니다. 발효도는 지금까지 제가 접해봤던 그 어느 908보다 높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말고 이전에 마셔본 것 중에서 가장 최근에 시음했던 것이 벌써 2년 전 일입니다. 제가 908을 05년에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발효도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지요.

7.5g을 우려보겠습니다.

제 7포까지 우렸을 때입니다.

9시방향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제 9포까지 우렸습니다.

내포성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관상태가 매우 좋기 때문에 맛과 향 모두 깔끔합니다. 잡미 잡향이 없고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차청 자체가 90년대 것이고 99년 압병 후에 2003년 전후까지 운남에 보관되어 있다가, 지금까지 계속 광동에서 건창으로 보관되었던 것을 감안해보면 이 정도 발효도는 매우 정상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 시음했었던 908은 부드러움보다는 거친 느낌이 많았는데 이 차는 전혀 다릅니다. 고삽미가 많이 꺾였고,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겨가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물론 그 동안 진기가 쌓였으니 당연히 그런 면이 있겠지만 그런 요소 외에도 보관 장소의 온도와 습도가 비교적 이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5포가 넘어가면 시원하고 상쾌한 맛이 사람을 기분좋게 합니다. 또한 진기가 꽤 된 차답게 점성이 많이 느껴집니다. 점도(점성도)가 높다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나이가 어린 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끈적끈적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건 차의 내재성분이 잘 우러나온다는 뜻이고 그만큼 발효도가 높다는 얘기입니다.

보이차는 흔히 20년을 보는 차라고 말합니다. 진기가 20년이 되면 그때부터 진년노차의 풍미를 제대로 나타내면서 차인이 귀히 여기는 보물이 되는 것이지요. 이 차가 앞으로 5~6년 더 지나서 대략 20년 진기의 노차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거리는 그런 멋진 노차가 되어 있을 겁니다. 물론 그 전에 먹고 싶은 것을 참아내야 하는 고통이 좀 있습니다만... ^^

엽저도 깔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차가 98년 압병인지 99년 압병인지는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참고하고 차를 시음해본 결과를 종합해보면 이 차가 90년대에 생산되었고 차청은 98년 이전의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해만차창 대리점에서는 이 차를 91~92년 차청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며 고가에 판매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좀 황당한 얘기라고 하겠습니다. 병차, 전차 합쳐서 908 전체의 생산량이 대략 20톤 미만이라고 보며, 대부분은 03년까지 곤명을 비롯한 운남에 보관되었고 03~04년 즈음에 전국 각처의 해만차창 대리상에게 많이 분양되었습니다. 제가 소개한 것 역시 이런 물건으로서 03년까지 운남보관, 그 이후로는 광동 건창 보관입니다.